화를 내는 순간에는 내가 왜 화가 났는지 너무나 분명하게 느껴집니다.
누군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거나, 이미 이야기했던 실수가 또 반복됐거나, 지금 상황과는 맞지 않는 변명을 듣게 되었을 때 화가 납니다. 내가 보기에는 당연한 일을 상대방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지면 목소리가 조금씩 커집니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옳다고 생각합니다.
문제가 생겼으니 원인을 찾아야 하고,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바로잡아야 하며,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회사에서는 시간이 곧 비용이 되기도 하고, 작은 실수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큰 문제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니 지금 화를 내는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화가 가라앉고 나면, 그제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보다 어떤 표정과 목소리로 말했는지가 떠오릅니다. 상대방이 설명하려 했는데 내가 말을 끊지는 않았는지,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보다 누군가의 잘못을 확인하는 데 더 집중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당시에는 변명처럼 들렸던 말이, 나중에는 상황을 설명하려던 말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잘못된 일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고쳐야 할 것은 고쳐야 하고,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다면 분명히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러나 잘못된 일을 바로잡는 것과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입니다.
저는 가끔 그 둘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는 조급함 때문에 목소리가 높아지고, 왜 이런 일이 생겼느냐는 답답함 때문에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듣지 못합니다. 지금 이 일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 나라는 생각이 들면, 마음속 부담이 화의 모습으로 먼저 나오기도 합니다.
돌아보면 제가 화를 냈던 많은 순간에는 화가 아닌 다른 감정이 숨어 있었습니다.
또 문제가 생길까 봐 두려웠고, 상대방에게 신뢰를 잃을까 봐 불안했습니다. 열심히 준비한 일이 작은 실수로 흔들리는 것이 속상했고, 왜 나만 이 모든 것을 걱정해야 하는지 서운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나는 지금 이 문제가 더 커질까 봐 겁이 난다.”
“이 일의 결과를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이 부담스럽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을 당신도 중요하게 생각해주기를 바랐다.”
이렇게 말하기보다 “왜 이것도 제대로 하지 못했느냐”고 말하는 편이 훨씬 쉽습니다. 두렵고 서운하다고 말하면 약해 보일 것 같지만, 화를 내면 적어도 상황을 통제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화는 문제를 빠르게 멈추게 할 수는 있어도, 언제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주지는 않습니다.
목소리를 높이면 상대방은 우선 행동을 멈춥니다. 내 말을 듣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문제의 원인을 생각하기보다 내 화가 언제 끝날지만 기다리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잘못을 솔직하게 말하기보다 숨기게 됩니다. 해결책을 함께 찾기보다 혼나지 않을 방법을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당장은 일이 정리된 것처럼 보여도, 더 중요한 신뢰가 조금씩 멀어질 수 있습니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화를 참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특히 같은 문제가 반복되면 ‘이미 몇 번이나 말했는데 왜 또 이러는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기 전에, 내가 그동안 참아왔다는 마음부터 앞섭니다.
하지만 내가 여러 번 말했다는 사실과 상대방이 제대로 이해했다는 것은 같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내 설명이 충분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지켜야 할 기준이 애매했을 수도 있습니다. 일을 맡기고 결과만 기다렸을 뿐, 중간에 확인할 과정은 만들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개인의 실수라고 생각했던 일이 사실은 회사의 방식이나 구조에서 생긴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화를 내는 동안에는 이런 것들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오직 눈앞의 결과와 그 결과를 만든 사람만 보입니다. 시간이 지나 마음이 조금 가라앉아야 비로소 ‘이 문제를 한 사람의 잘못으로만 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모든 문제를 제 탓으로 돌리려는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 분명히 책임져야 할 일이 있고, 반복되는 실수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이야기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화를 내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거나 모든 것을 이해해줘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배우고 싶은 것은 화를 없애는 방법이 아니라, 화가 나더라도 그 감정에 모든 말을 맡기지 않는 방법입니다.
당장 말하면 상처가 될 것 같을 때는 잠시 자리를 벗어나는 것. 무엇이 잘못됐는지와 내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를 나누어 생각하는 것. 사람 자체를 판단하기보다, 바꿔야 할 행동과 기준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것.
그리고 상황이 정리된 뒤에는 내가 말한 방식도 돌아보는 것입니다.
내가 옳은 이야기를 했다고 해서, 모든 방식이 옳았던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내용이 맞더라도 전달하는 과정에서 상대방을 무시했다면 그 부분은 인정하고 사과해야 합니다.
저는 예전에는 사과하면 제가 했던 지시나 판단까지 틀린 것이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내가 지적한 문제는 여전히 고쳐야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당신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은 미안하다.”
이 두 문장은 함께 존재할 수 있습니다. 업무에 대한 기준을 지키면서도, 말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사과할 수 있습니다. 사과가 책임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며,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이 원칙을 버리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저도 언제나 그렇게 하지는 못합니다.
화를 내고 후회하면서도 먼저 말을 걸지 못하는 날이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하며 모른 척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풀지 않은 감정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 한쪽에 남습니다.
그래서 늦더라도 다시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그때 내가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무엇이 두려웠는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내가 보지 못했던 상대방의 사정도 들어보려고 합니다.
화가 난 뒤에야 보이는 것들은 대부분 그 순간에도 그 자리에 있었을 것입니다.
다만 제 감정이 너무 커서 보지 못했을 뿐입니다.
상대방의 당황한 표정도, 설명하고 싶었던 말도, 제 마음속에 숨어 있던 두려움도 모두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화가 가라앉은 다음에야 그것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앞으로도 저는 화가 날 것입니다.
책임져야 할 일이 있고,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있는 이상 화를 완전히 피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화가 난 순간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보다 문제만 크게 보이지는 않는지.
해결해야 할 일보다 내 억울함을 먼저 쏟아내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원하는 것이 문제의 해결인지, 아니면 상대방이 잘못했다고 인정하는 것인지.
한 번쯤 멈추고 생각할 수 있다면, 같은 화를 내더라도 그 뒤에 남는 것은 조금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화가 난 뒤에 무엇을 보게 되나요?
그 순간에는 분명히 내가 옳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난 후 상대방의 입장이나 자신의 진짜 마음을 발견한 적이 있나요?
그리고 당신이라면 잘못된 일은 분명히 바로잡으면서도, 가까운 사람이나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남기지 않기 위해 어떤 방법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저도 아직 화를 잘 다루는 사람은 아닙니다. 다만 화가 지나간 자리에 무엇이 남았는지 외면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 해우소지기
댓글 남기기